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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따의 기록 보관소/찐따의 생각과 일기

찐따, 머리를 자르다. 그리고...

펭찐 2022. 9. 13.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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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에 다녀왔다.

약 1~2년 동안 기른 머리를 잘랐다.

어차피 만날 사람도 없었거니와,

딱히 남들 눈치 볼 필요도 없었고,

처음 면접 보러 갔던 곳도 별 지적도 없었기도 했었고...

 

그래서 매일 머리 한 줌은 눈가 밑으로 흘려 내려보냈고,

전체 머리는 위쪽으로 한데 모아 포니테일로 묶고 지냈었다.

그러나 다음에 면접을 보러 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손질을 해야만 했다.

 

나는 미용실에 들어가서 "2년 전으로 돌려놔주세요."라고 말했고,

미용사는 웃으면서 나에게 "타임캡슐 여는 거예요?"라며 능청스럽게 답했다.

미용사답게 화려한 헤어 스타일과 화장기 머금은 미모,

게다가 찐따의 시답잖은 대답을 받아치는 부분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인싸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열심히 머리를 손질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나의 긴 머리를 쓸어내리며 "우와... 저보다 머리 긴 것 같으세요!"라며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는 말로 나의 눈치를 살폈다.

 

역시 나는 찐따답게 거울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채

눈을 아래로 푹 내리 깔고 있었다.

"어떻게 잘라드릴까요?"라는 물음에

나는 "그냥 대충 잘라주세요."라고 답했다.

누구한테 잘 보일 필요도 없고,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그러자 미용사는 "어... 음... 그럼 이 스타일로 잘라드릴까요?"라면서

감당 못할 이 찐따에게 눈물겨운 서비스 정신을 보였다.

그래서 나는 마지못해 "그럼 그냥 반삭발로 할게요."라고 답했는데,

"에이! 그건 안 돼요!"라며 이미 포기상태인 나를 뜯어말렸다.

 

그리고는 "머리 펌 하고 올리시면 될 것 같은데~"라고 친절하게 말했지만,

"아뇨... 전 왁스 바를 줄도 모르고, 머리 올리는 법도 몰라요.

저는 찐따라서 친구도 없기 때문에 손질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알아서 잘라주세요.

마음대로 잘라주셔도 상관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애초에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소개팅을 가는 것도 아니고,

만나러 갈 친구나 애인이 있어야 잘 보일 것 아니겠는가...

어차피 면접을 보기 위한 일회용 헤어 스타일에 지나지 않고,

앞으로는 사무실에 틀어박혀 일만 하게 될 사람인데

머리 스타일 따위 신경 써봤자 뭐하겠는가.

 

그러나 나의 말을 무시한 채,

그 미용사분은 엄청난 서비스 정신을 발휘하며

꽤 그럴싸하게 머리를 손질해주셨다.

"펌 안 하면 머리가 뜨셔서 이상해져요..."라며

애써 거부했던 펌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호구 잡는 줄 알았는데, 정말 머리가 많이 떴다.

옛날부터 미용실에 갈 때마다 잘 뜨는 머리라고 자주 듣긴 해서

'그런가 보다.'라고 알고는 있긴 했어도

구태여 펌을 할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머리가 많이 긴 상태이셔서 안 떴던 건데, 머리가 짧으면 이렇게 잘 떠요."

이렇게 말하고는 곧바로 펌을 하기 시작했다.

"면접 보시려면 깔끔하게 하고, 머리는 올리시는 게 좋아요~"라며

어떻게든 머리를 올리는 것에 대해 나를 설득하려고 하였지만,

나는 "아닙니다.. 전 머리 내려서 얼굴 가리고 싶습니다.."라고 계속 거부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앞머리를 가차 없이 자르고 나서는

"이제 샴푸 하러 갈까용~?"라고 하며

이 찐따의 고집을 꺾고 말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샴푸를 끝내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며 말했다.

"머리 올리는 법 알려드릴게요~ 이렇게... 이렇게..."

나는 애써 미용사분을 말리며 말했다.

"저는 앞머리 내릴 거예요... 머리 올리는 법 몰라요."

이렇게 대답하면서 어떻게든 뜯어말리려 했지만,

미용사분은 내 말을 무시한 채 "다 됐어요~ 이렇게 머리 올리시면 돼요!"라면서

결국 머리 올리는 방법을 강의 아닌 강의를 진행하며 완성시켰다.

나는 거울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헤어 스타일만 그럴싸하면 뭐하겠는가...

와꾸부터가 박살난 병신 같은데...'

이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웃겨서

자꾸만 헛웃음이 나와 어깨가 들썩였다.

진짜 찐따 같았다.

 

이 치열한 신경전의 끝은 결국 미용사분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돈 내고 가버리면 되는 입장이라서 그렇다지만,

미용사분은 굳이 왜 이렇게 피곤하게 굴고 까탈스러운(?)

나 같은 찐따에게 잘해주시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왠지 다음에 안 오실 것 같아서요... 혹시 맘에 안 드시나요...?"라는데

솔직히 머리 스타일은 마음에 들었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그게 오히려 부담스럽다고 해야 할까...

한창 겉모습 꾸미는데 이것저것 연구하던 옛날의 나였으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인사를 올렸을 텐데

지금의 나는 이제 그런 거 신경 쓸 필요조차 못 느끼는 사람이라서

"머리 지저분해지면 오려고 했는데... 딱히 잘해주시지 않아도 돼요."라며

일단 당장의 상황을 넘어가기 위해 이렇게 대답했다.

 

아마 내 인생에 있어 가장 다이내믹한 머리 손질이 아니었을까 싶다.

혹시 나의 표정에서 우울함이 드러나서 그랬던 것일까.

분명 그분은 속으로 찐따인 나를 엄청 욕하고 있었겠지만,

적어도 그분의 서비스 정신은 가히 경외할만할 프로급 수준이었다.

인싸가 왜 인싸인지 알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 민폐가 되지 않도록 다음에는 가면 안 되는 걸까.

아니면 그분의 마지막 말대로 다시 가야 할까.

에휴... 모르겠다.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머리 스타일도 만족스러우니까...

다음에 다시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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