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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따의 기록 보관소/찐따의 생각과 일기

왜곡된 세계

펭찐 2022. 4. 1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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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

등대처럼 반짝이는 마천루 속에서 한없이 작디작은 군중들과

그 군중들이 만들어내는 대서사시와 군상극.

그 군중속에 섞이지 못한 패잔병이 그려내는 드라마와 시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이들로 하여금 감동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이것은 현실세계를 표현해낸 것이 아닌, <이세계>라는 새로운 무대를 그려 넣고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공허함만이 남은 <현실세계>라는 전쟁터 속에서 작은 안식처가 되어주는,

일종의 회피 수단으로 여기며 이들은 도생하고있다.

소년 시절로 되돌아가고픈 욕망과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스스로의 혐오감을

<이세계>라는 허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문화 콘텐츠를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과오를 씻어내고 싶은 욕망이 드러나있다.

의미 없는 전쟁을 더는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잔병 주제에 의미 없는 전쟁을 다시 하려는 미련한 존재가

커다란 마천루 아래에서 생각에 잠겨있다.

 

외부세계와의 소식통이 다시금 완전히 끊겨버린지 어언 1년째.

방 안에 마치 쇠사슬이 엉켜있어 속박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로지 나 자신과의 싸움에만 몰두한 나머지,

산책을 하러 나가기 전까지는 벚꽃이 만개해 흩날리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것은 나에게 나 스스로가 정신세계마저 격리시킨 뒤에 마취를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가 행했던 기략종횡, 쌓아온 업보가 과연 온전치 못했던 것이었나 싶다.

나는 싸우러 간다.

마치 미지의 세계를 조우하듯 낯설고, 두렵고, 무섭지만,

한때 친구가 되어주었던 소녀의 기대감을 나 스스로가 저버린 경험.

그 경험을 통해 나는 인내와, 관용과, 신뢰를 배웠다.

또한, 세월이 만들어낸 유연함은 이러한 감정들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 조심스레 믿어본다.

도약을 하려면 그만큼의 경험이 필요하지만, 그러한 경험이 나에게는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고로 실패할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나는 싸우러 간다.

이미 실패의 연속에 점철되어 익숙해졌기에,

설령 실패한다 할지라도 고작 실패 전적 하나가 더 늘어나는 것뿐.

이번 생에 크나 큰 미련이 없다는 것은 스스로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생각을 하며 스스로에게 다시금 최면을 걸며 마취를 시도한다.

취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가 없다.

좌표계 이론에서도 벡터 공간에서 올곧은 선형 벡터만 존재하진 않는다.

비선형 벡터도 존재하듯,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법칙은 없다.

고로 나는 반드시 앞으로 전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옆으로 가는 방법도 있고, 뒤로 돌아가며 회귀하는 방법도 존재한다.

싸우기 전의 상태는 얽힘 상태와도 같다.

방 안에 존재하는, 마치 나를 옥죄는 쇠사슬처럼 말이다.

관측되지 않은 상태, 파동 함수가 붕괴되기 직전 아직 얽혀있는 상태다.

또한, 딜러가 카드 패를 나눠주기 전까지는 어떤 카드가 들어올지는 모르는 법이다.

스스로가 만들어낸 미천함, 미련함, 그리고 파렴치함을 뒤로한 채

다시 새로운 모습을 그려가면 되는 것이다.

나의 존재는 고귀하지 않으며, 일련의 소망도 없다.

고귀하지 않음은 고귀함을 유지할 것이 없음을 의미하고,

일련의 소망이 없음은 곧 잃을 것이 없음과도 같다.

물론, 실패할 것이라는 것은 나 자신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싸우러 간다.

다시 재회할지, 재회하지 못할지 모르는 이 세상과 조우할 날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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