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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이란 무엇일까

펭찐 2022. 2. 12.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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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공책에만 적다가 다시 블로그에 일기를 쓰려하니 뭔가 어색한 기분이 든다.

오늘 하루도 별일 없이 무탈하게 끝이 났다.

평소에는 산책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기억이 나는 대로 공책에 옮겨 적었다.

오늘 떠올렸던 주제는 '갈등'에 대한 것이었다.

 


 

 

인간, 더 나아가 사고력을 지닌 지성체라면 늘 '갈등'이라는 중심에 놓이게 된다.

이 '갈등'이라는 것은 나 아닌 다른 어떤 존재와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도 발생하게 되지만,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갈등을 느끼거나 유발하는 경험도 분명 존재한다.

이것을 문학적인 표현으로 '생각의 늪에 빠지다'라고 표현하거나, 아예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게 되면 '망상' 내지는 '쉐도우 복싱'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조금 더 조사해보니 스스로에게 갈등을 느끼는 현상을 한 차원 더 높여 '메타인지'라는 표현도 존재했었다.

예전에 과몰입에 관한 고찰을 다룬 것의 연장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이 '갈등'이라는 것이 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살아 숨 쉬는 생명체는 늘 무언가를 갈망한다.

갈망하는 것이 생존일 수도 있고 안전의 보장, 혹은 안락함일 수도 있고 다른 어떤 무언가 일 수도 있다.

자연의 법칙은 기본적으로 덧셈(+)과 뺄셈(-)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학이라는 학문에서도 수많은 대수 체계와 기호, 수식들을 만들어내는데 가장 근간이 되는 것도 바로 덧셈과 뺄셈이다.

사칙연산에서의 곱셈과 나눗셈 역시 덧셈과 뺄셈을 주어진 대수 체계에서 보다 빠르게 연산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연산법이다.

물리와 화학에서도 열역학 제1법칙인 에너지 보존 법칙에 의해서 원소끼리의 결합이나 분열이 일어날 때 역시 에너지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작용하는데 충분한 에너지(촉매제)가 필요하다.

애니나 무협 쪽에서도 익히 들어봤을 법한 동양 철학에서의 음양(陰) 역시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다시 말해, 갈망하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여기에 부합하는 또 다른 무언가가 소비되어야만 한다.

소비의 원료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물리적인 힘이 필요할 수도 있고, 물질적이거나 추상적인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갈망을 이루고자 하는 데는 분명 한계치가 있으므로 당연히 그 한계에 도달하기 마련인데, 여기서 발생하는 특수한 사건이 바로 '커뮤니케이션', 즉 '거래(혹은 타협)'다.

 

 

 

지성을 가진 생명체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커뮤니케이션이란, 언어를 통해 직접적으로 생각의 뜻을 전달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행동과 감정표현도 포괄하는 개념으로 다루고자 한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서로 간 상호작용을 하고 거기서 발생되는 거래를 통해 자신이 갈망하는 목적을 갈구하고 성취할 수 있다.

거래가 성사 혹은 불성사 된다면 이를 통하여 이득(+)이 발생될 수도 있고 손해(-)가 발생될 수도 있다.

이때 거래(혹은 타협)가 반복적으로 실패하게 되어 만족감을 얻지 못하게 되면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감, 거기서 발생하는 좌절감 내지는 상대적 박탈감이 동반될 수 있다.

그다음 단계는... 바로 '갈등'의 시작이다.

상호작용하는 주체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만큼 거래를 해야 하는 상대(거래처)가 많아지게 됨을 의미한다.

그것이 개인(나 자신 혹은 자아), 타인, 단체, 사회, 국가, 더 나아가 전 세계 등 스케일이 커지면 커질수록 거래는 더 이상 수직 구조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여러 가지 형태의 그래프로 퍼지게 된다.

즉, 정리해보자면 '갈등'은 지성체가 가지고 있는 어떤 갈망과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을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갈등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최대한 타협점의 허들을 낮추기 시작하는데, 그것을 나는 인지부조화라고 보고 있다.

이때 특수한 과정을 거치게 되며, 회피, 현실부정, 발악, 합리화 등 이외에도 다양한 현상들이 나타난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은 문명을 형성하는데 그만큼 필요한 기술력과 노동력이 정말로 많이 동반되었다.

누군가는 슬퍼해야만 했고, 또 누군가는 피를 봐야만 했고, 그 덕에 누군가는 만족감과 행복감을 누렸다.

세월이 흐를수록 단체라는 틀 안의 밀도가 높아졌고, 또한 그만큼 사회체계가 굉장히 복잡해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연히 거래를 해야 하는 상대가 많아지니 여기저기서 다양한 이슈들이 발생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세상이 이러한데, 하물며 나 자신 스스로가 내적인 갈등이 일어나는 것 또한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 아닌가.

어쩌다 패배를 맛보고, 어쩌다 승리도 맛보고, 그것을 통해 성장한다.

나 또한 수많은 갈등이라는 풍파를 겪어보며 크나큰 상실감을 맛보았고, 정신이 망가져보았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결국 이 갈등이라는 것을 통해 나는 성장했다.

그렇기에 갈등이라는 것은 단면적으로만 바라본다면 추할지 모르겠지만, 보는 시각을 조금만 달리해서 입체적으로 바라본다면 꽤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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