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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따의 기록 보관소/찐따의 사회생활 일지

사회라는 늪은 인간을 집어 삼켜버리는 것 같다.

펭찐 2025. 3. 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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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 그것은 지옥이다.
- 장폴 사르트르

 

2025년 3월 7일 오늘, 회의를 하는 날이었다.

지금 있는 회사는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마다 주간 회의를 진행한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업무 현황과 리스크 및 이슈 사항을 보고하는 자리다.
C급 임원들끼리 진행하는 임원회의가 따로 있고,
팀장급부터 사원급까지 진행하는 주간 회의가 따로 있다.
 
지금 있는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나는 아직 적응 중이다.
그러나 오늘 회의 때 일어난 사건을 통해 회사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분위기가 아주 망했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생각할수록 이런 회사는 생전 처음이라는 생각뿐이다.
 
지금 있는 회사는 규모가 작은 기업이라서 직원들은 얼마 없다.
대리-사수 라인의 직원들이 계시는데, 이 두 분과 팀장급 관리자분이
아주 대판 싸우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어제 오랜만에 사회생활 일지를 기록하면서 현재 있는 회사의 인간관계가
매우 불편하다는 언급을 했던 적이 있다.
알 수 없는 기류가 흐르고 있었는데, 오늘 그 원인을 알게 된 것 같다.
원인은 역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의 부재였다.
 
회사 분위기가 매우 개인주의적인 분위기라고도 언급했었는데,
이것이 나쁘다고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오히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나에게는 매우 좋다.
다만 회사 분위기가 경직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에 있어서는
쓸데없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분위기로 빠지기 때문에 문제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오늘에서야 터지고 말았다.
...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일이 설명하기가 까다롭기에 결론부터 풀어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팀장급 관리자분(이하 책임자라고 하겠다)께서 원하시는 그림과
밑에 있는 직원들의 생각이 동상이몽인 상태로 굴러가고 있었다.
 
책임자분은 나보다 약 두 달 전에 먼저 입사하셔서

나처럼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신 분이다.
때문에 회사 시스템을 잘 모르고 계신 상태여서

사내 체계를 잡는 데에 신경 쓰고 계시고,
지금 있는 회사에서 필요한 비즈니스 용어들을 따로 공부하고 계시는 중이다.
물론, 그분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비즈니스 용어들을 따로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대리-선임분들은 이 회사에서 일한 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약 1년이 좀 넘으신 것으로 알고 있다.
이 회사 이전부터 이쪽 바닥에서 오래 일해왔기 때문에 알고 계신 것이 더 많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책임자분을 책임자라고 따를 수 있겠냐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책임자분의 능력을 의심하는 발언들을 오늘 거침없이 마구 쏘아붙였고,
선임분도 역시 마찬가지로 매우 공격적인 언사를 거침없이 쏟아내셨다.
그런 상황에서 책임자분은 침착하게, 그리고 인상 한번 쓰지 않으신 채 '허허' 웃으시면서
보는 내가 다 불편할 정도로 받아주시는 듯 보였고,
오히려 본인이 어떠한 잘못이 있었는지 생각하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피 말리는 분위기 속에서 눈치밖에 볼 수 없던 나는

그저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른 채
속으로 '와, 살다 살다 어떻게 이런 회사가 다 있지...'라는 생각뿐이었다.
물론, 사람들 한 명 한 명으로 놓고 보면 다들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더 좋게 이야기할 수 있고, 좀 더 논리 정연하고 이성적으로 답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까 보는 내가 다 불편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책임자분은 계속 <브레인스토밍>을 해보자고 했다.

본인도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아 여러분들께 배워야 할 것들이 많고,

본인이 "이것은 무조건 해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여러분의 의견을 묵살하는 것밖에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책임자분께서 정리하셨던 문서들을 보여주셨다.

 

의견 통일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동안 회의를 통해 어떤 의견을 내놓았었는지,

임원회의 때 회사가 나아갈 방향이 어떻게 정해졌었는지.

 

두 분은 어떤 의견이 나오든 무조건 반대를 했다.

기술적으로, 물리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럼 저희가 일을 두 번 해야 하는 건가요?"

"여러분들이 그렇게 해야만 한다면, 두 번 일을 해야겠죠."

 

두 사람의 의견이 틀린 의견은 아니었다.

아니, 현실적으로 오히려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것인가.

이미 회사에서 목표를 잡아놓았다면,

그 목표를 어떻게 이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 보고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는다.

 

책임자분도 연세가 있으신 분인데,

아버지뻘 되시는 분에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감정적으로 격양되면서 이야기할 것까진 없지 않나 싶다.

불편했던 회의가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사장님께 혼자 점심을 해결하고 오겠다고 조심스레 의견을 전했다.

그리고는 회사밖으로 나와서 잠시동안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에휴,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소중한 연인에게 전화통화를 했다.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네가 있어서 이토록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버틸 수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어머니에게도 전화를 드렸다.

네가 애인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감을 배워라'라고 하셨다.

'책임감이라... 그래, 이 경험으로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것은 어머니 말씀대로 <책임감>,

그리고 어쩌면 <사람>이 아닐까.'

 

점심시간이 지나고, 책임자분과 단 둘이 사무실에 남아있게 되었다.
또다시 불편한 기류가 흘렀다.
나는 생각했다.
'우으으... 나서지 않는 것이 상책인가,

아니면 이 상황을 타개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동시에 생각했다.
소중한 연인과 함께 지냈던 시간들이 나에게 가르쳐준 교훈을 말이다.
 
이토록 불편한 기류를 깨고자 고민했다.
'뭔가... 삼국지의 일화를 생각해 보자...'
그렇게 생각난 일화는 '법정'과 '유비'의 일화였다.
'그래, 문뜩 법정과 유비의 관계가 떠오르네...'
 
법정은 굉장히 뛰어난 전략가였고, 유비가 익주를 차지하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문제는 유비가 법정을 너무나도 신임하고 칭찬을 과하게 했다.
법정은 유비를 도와 익주를 평정했지만, 스스로를 크게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비는 법정을 너무 신임한 나머지, 공개적으로 자주 칭찬했고,
심지어 여러 사람들 앞에서 "내가 법정 덕분에 익주를 얻었어"라고 말했다.
법정은 원래 낮은 자세를 유지하는 타입이었고, 조용히 일하는 걸 선호했다.
그런데 유비가 계속 법정을 치켜세우자,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시기와 견제를 받게 되었고,
"유비가 법정이 대단한 것처럼 만든다"는 말이 돌면서, 법정은 점점 더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법정은 "이렇게 나를 띄우는 것은 나에게 부담이 된다"라며,
유비의 과한 관심이 오히려 불편하다고 느끼게 됐다.
 
그래서 법정이 어떻게 행동했을까?
법정은 유비의 칭찬과 신임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최대한 조용히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결국 유비의 과한 칭찬으로 인하여
주변 신하들의 질투를 받아서 정치적으로도 불리한 상황이 되었다.
법정은 너무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으로 중요한 역할은 계속 유지하려고 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결국 익주를 차지한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건강이 악화되어 일찍 세상을 떠났다.

만약 이 분위기가 불편해서 풀어야 한다면,
그것은 나의 능력으로 가능한 부분인 것일까.
아니면 이미 나의 손을 떠나버린 문제인 것일까.
능력밖의 일이라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것인가.
아니면 상황을 타개하고 나의 의견을 전달하며 모험을 해봐야 하는 것인가.

가만히 있으면 반은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법정은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유비가 가만두지 않았다.
불똥이 나에게 언제 튈지 모르는 문제였다.

 

호의적인 사람을 매정하게 배척하는 행위.

줄곧 내가 당해왔었던 일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배척당해 왔던 나에게 소중한 연인이 다가와주었지 않은가.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다가갈 차례가 아닌가.

타인을 배척하면서 살벌하게 미소 짓는 그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들과도 친하게 지내야만 하는 나.

그런 일을 당해왔던 나였기에,

그리고 누군가가 다가와주었던 경험이 나를 바꾸었기에

결국 고민 끝에 나는 책임자분에게 다가가 말했다.


"회의를 통해 알게 된 것은 현 프로젝트의 문제점을 두 분께서 지적하셨던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그 부분에 대해 두 분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좀 더 열린 마음으로 가능한 방법을 모색해 보는 것이 옳다고 저 또한 생각하기에
이 부분에 있어서는 책임자분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저는 여기에 와서 무언가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책임자분께서는 본래 교육활동도 하셨던 분이니, 저에게는 배움의 기회가 생겨 좋다고 생각합니다.
각설하여, 다른 것도 아니고 이것은 <비즈니스>입니다.
비즈니스를 하려면 어떻게 잠재적 고객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가를 그려야 하고,
그것을 기획하였다면 최종적인 아웃풋을 코드로 개발해서 녹여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다만 상황이 이러하니, 프로젝트에 보수적인 의견과 새롭게 디밸롭 하는 의견...
이렇게 투 트랙으로 나뉘었으니 이렇게 가보는 것이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회의시간 동안 눈치 보다가 너무나도 피가 말려서 의견을 올리고자 하였습니다."
 
책임자분은 나에게 고맙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회사가 그리고 있는 목표를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지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 이래야 맞는다.
내가 알고 있는 대로... 이게 회사고, 결국 비즈니스다.
비즈니스를 하려면 이것이 옳은 것이겠지...'

인간이 세 명 이상이 되면 정치가 시작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이것이 내가 그토록 혐오하는 사내정치의 시작이 될지,
아니면 정치판을 뒤엎어버린 수가 될지...
참으로 힘든 날이었다.

 

인간관계.

이토록 작은 규모의 군중 속에서 조차도

살벌한 분위기로 만들어진 갈등과

그 갈등을 먹고 만들어진 파벌.

이것은 사회라는 늪이다.

 

이 사회라는 늪에서,

나는 양쪽 그룹 모두에게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절반은 간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편을 만들어두는 것은

훗날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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