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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따의 기록 보관소/찐따의 생각과 일기

모든 것은 한순간이야

펭찐 2023. 7. 14.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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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 힘이 풀린다.

넘어지고 일어서지 않는다.

입안에 흙탕물이 가득 찬다.

그럼에도 일어서지 않는다.

이러한 처지에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쏟아지는 빗물이 다시금 몸을 씻겨주고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 내 눈앞을 지나간다.

개미인가.

비가 이렇게 내리는데도

개미는 도대체 왜 걸어가는 것일까.

나처럼 가만히 있으면 편해질 수 있을 텐데.

개미와 나의 거리가 천천히 멀어져 간다.

 

빗물 속에 한참을 누워있었다.

그럴수록 몸이 추워진다.

심장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일어서지 않는다.

고로 몸이 추워져도 편하다.

이 느낌은 전에도 한번 느껴본 적 있다.

낯설지 않고 무언가 익숙하다.

아마도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신호일 것이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다.

입안에 흙탕물을 가득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답답하긴 하지만 그래도 뭐 어떠한가.

마냥 좋기만 하다.

후회나 미련 같은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몸은 추위에 못 이겨 저절로 떨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정신은 이토록 편한 적이 없었다.

정신이 몽롱해진다.

 

어느덧 추위가 가시고 몸이 뜨거워진다.

눈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몽롱함을 넘어 슬슬 졸려진다.

모든 근심과 사심이 전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대로 죽음을 맞이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잠이 드려던 찰나에 문뜩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쩌다가 넘어졌더라.

내가 어쩌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더라.

애당초 내가 여기에 왜 왔었더라.

모르겠다.

이제 와서 그런 게 중요한가.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더는 생각하기도 귀찮다.

 

다만 확실한 것은,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쓰러지는 것도,

넘어져서 일어날 기력이 없어지는 것도,

모두 찰나의 한순간에 일어난 일들이었지.

그래,

어쩌면 이 세상 모든 일들은

모든 것은 한순간이야.

 

...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찰나의 생각을 하자마자

갑자기 몸이 일어서려고 한다.

일어서려고 몸부림치기 시작한다.

흙탕물을 게워내려 마구 기침을 하기 시작한다.

팔에 힘이 안 들어간다.

그러자 어깨를 돌려 땅을 짓누른다.

몸이 굉장히 뜨거운데도 굉장히 춥다.

남은 힘을 몽땅 쥐어짜 내었나 보다.

 

정신을 차려보니 일어났다.

정면에 커다란 나무가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다리에 힘이 돌아오지 않는다.

있는 힘을 모두 쏟아부어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무릎을 꿇은 채 기어갔다.

온 힘을 다해 나무에 기대어 걸터앉았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햇빛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힘들어서 지쳐버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개미가 보인다.

출발은 늦었지만 개미와 동시에 도착했나 보다.

다들 이렇게 열심히 사는 이유가 뭘까.

아까 잠에 들었다면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아도 됐을 텐데.

나는 지금 후회하는 건가.

이 감정이 후회라는 감정이 맞는 걸까.

 

숨쉬기가 버거울 정도로 습하다.

입안에 모래알이 굴러다녀서 괴롭다.

두 팔다리는 움직일 생각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그저 멍하니 잿가루로 분칠 해놓은 듯한

저 드넓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뿐이다.

 

잿빛 구름 사이로 갑자기 광명이 쏟아졌다.

갑작스럽게 프리즘을 통과한듯한 알록달록한 광채가

엉망이 되어버린 나의 안구를 파고들었다.

눈이 너무 부셔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나도 모르게 윽 하며 소리를 냈다.

 

꿈이었다.

아니, 악몽인가.

꿈이라고 해봤자 매일 악몽만 꾸는데.

왜 그랬을까.

꿈속의 나는 왜 일어났을까.

만약 그대로 잠들었다면 현실에서도 영면했을까.

 

목이 마르기 시작했다.

창가에 빗방울이 연주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창가를 바라보며 나는 목을 적셨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모든 것은 한순간이라고 했었나...'

 

그래, 만약 다음에도 똑같은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절대로,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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