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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따의 기록 보관소/찐따의 생각과 일기

찐따, 집으로.

펭찐 2023. 5. 9.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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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주유의 테마(周瑜のテーマ) ~ 삼국지(三國志) 13 OST ~

 


 

 

일을 그만둔 지 벌써 3개월 정도 지났다.

그만둔 이후로 나는 매일 집에서 폐인 생활을 이어갔다.

내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조차 감흥이 되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

 

2023년을 맞이하고 명절 이후로 본가로 돌아간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약 4~5개월 만에 본가로 돌아간 셈이다.

 

오랜만에 본가로 돌아왔어도 생활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부모님은 사흘동안 여행에 다녀오셨고,

집을 비우신 동안 나 혼자 집에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평소처럼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좋았던 것은 오랜만에 집밥을 먹었다는 것이다.

비록 어머니께서 여행을 다녀오시기 전에 미리 해놓고 가신 것이지만,

나는 늘 그래왔듯 애니를 보며 식사를 만끽하였다.

 

밥을 먹으며 나는 생각했다.

'정말이지... 내년이면 벌써 서른인데...

아무리 나이를 처먹어도 과거와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나 자신도, 내가 살던 동네도, 그리고... 이 집도...

음... "집"이라...'

 

몇 달 전, 일을 그만둔 나에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지낼 생각이냐고 말이다.

솔직히 입안의 것은 "단지... 이제 그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죽고 싶습니다."였으나,

나는 애써 참으며 어머니께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나온 대답은 "도시를 떠나 시골로 내려가겠습니다."였다.

 

사실 말이 시골이지, 자연인으로 지내겠다는 말이었다.

때문에 부모님도 나의 결정에 알겠다고 대답했다.

여전히 나의 결정에 납득하시지 못한 듯 보였으나,

'그래,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게 어디니.'라는 심정이신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심정과는 별개로 나는 되려 죽으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누구에게도 민폐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지내다가

때가 되었다 싶으면 곧바로 죽을 계획을 주도면밀히 계획하였으니 말이다.

 

이미 죽기 위해 필요한 장비들은 벌써 몇 년에 걸쳐서 모두 구비해 두었다.

그리고 나의 모든 계획들은 모두 철저하게 문서화시켜 두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중학생 시절부터 러프하게 생각만 해두었던 것...

당시에는 미성년자라서 구할 수 없었던 장비들을

성인이 된 이후에 구체화하면서 이미 플랜 A부터 E까지 세워둔 상태이다.

최대한 단숨에 숨통이 끊어지도록 하는 장치부터 설계하였고,

신체적인 고통, 의식불명에 이르는 시간 등 인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이 몸으로 직접 생체실험까지 하면서 기록해 두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들어갈 관의 규격, 크기까지 모두 설계하였으니

문서를 열어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정도면 거의 계획을 넘어 매뉴얼 수준이 아닐까 싶다.

 

죽기 위한 계획은 아주 철저하게 세워두었다.

그럼 실행에 옮기는 일만 남았다.

마치 핵미사일 버튼과 같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발사되는 핵미사일.

한번 누르면 모든 것이 전부 다 끝난다.

 

그런데... 왜 자꾸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일까.

그때 그 소녀가 나에게 남겨둔 미련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일까.

미련이 남아있다면 없애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당시 부모님께 "시골로 내려가겠다."라고 말하기 전에,

나는 고민하고, 생각했다.

 

'죽어야 할 이유도, 명분도 충분하다.

 

솔직히 "찐따 인생"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되지만,

그 외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유들 역시 나 자신이 충분히 납득되는 명분이다.

그렇다면... 이제 나에게 남은 "미련"이란 무엇일까.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이미 나의 직·간접적인 죽음의 경험으로부터 깨달은 바 있다.

 

약 28~9년의 지난 세월 동안 과연 "나"는 존재했는가?

그 세월의 편린 속에 존재하는 "나"는 진짜 "나"인가?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내 집이 아닌데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과거에 살았던 집 역시도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

내가 밟고 서있는 이 땅도 내 땅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알아낸 나의 "미련"이라는 것은

온전한 "나 자신"으로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닐까.

 

그래, 그렇다면 다시 시작하자.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내가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시작하는 거다.

 

수천 년 전, 선사시대부터...

무주공산이었던 그때로 돌아가자.

불을 피우고,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사냥도 하고...

모든 것을 직접 이 두 손으로 일구며 진짜 "내 것"으로 만들고,

훗날 죽게 된다면 이 육신을 포함하여 이치에 따라 대자연에게 돌려주자.

 

그것이 정녕 온전한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내는 길이겠지.'

 

나의 이러한 생각은 당연히 부모님께 알리지는 않았다.

일련의 생각들을 생략한 채 "시골로, 산으로 가겠습니다."라고 말하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히 납득하기 어려우실 것이다.

그럼에도 과거, 학창 시절 눈물콧물 질질 흘리며 처맞고 다니던 찐따는

어느덧 내년이면 서른을 앞두고 있는 성인의 몸이 되었기에

함께 늙어가시는 부모님은 나를 막을 수 없으셨다.

아니, 어쩌면 무정하고도 비단하게 흘러가는

이 세월의 흐름을 막지 못하셨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또한 아버지께서도 이미 정년퇴직을 하신 몸이기에

부모님께서도 이제는 시골로 내려가고픈 마음이 있으셨나 보다.

물론, 나는 온전한 "나"로 생을 마감하기 위하여

사회로 진출했던 그때와 같이 부모님과 함께 지낼 생각은 없으며,

부모님 역시도 나와 같은 생각이신 것 같았다.

 

이미 예전에도 블로그에 수차례 언급한 바와 같이

나이, 세월이라는 것은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는 것을 이 몸으로 직접 느끼고 있다.

세월은 강산도 변하게 만든다.

하물며 강산보다도 한참이나 작디 작은...

한낱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따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 세월을 피해 갈 리 만무하다.

 

몇 달 만에 돌아온 본가에서

말없이 그저 거실을 바라보며 위와 같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깊게 생각에 잠겨있는데, 어렴풋이 벽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이 보였다.

약 20년 전에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저 철없는 꼬맹이는 알고 있을까.

20년이 흐른 지금, 대가리만 컸지,

가정의 달에 생각하는 수준이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그리고 5월 7일 저녁, 부모님께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셨다.

즐거워 보이셔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다녀오셨어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리고 어제 5월 8일.

어버이날에 나는 다시 본가에서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역시 내 생활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월세를 내는 것은 이번 달이 마지막이다.

이번 달을 끝으로 나는 자연으로 떠날 테니 말이다.

 

지금 살고 있는 여기 이곳이 집일까.

아니면... 나의 생각대로 그곳이 정말 나의 집일까.

 

그렇게 찐따는 말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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