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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따의 기록 보관소/찐따의 생각과 일기

찐따, 일을 그만두다. -1-

펭찐 2023. 2. 1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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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길었던 영겁의 시간이었다.

일을 그만두게 된 것은 2월 첫째 주의 일이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굉장히 지쳐버렸기에,

정말 어렵게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일을 그만둔 뒤로,

현재까지 나는 계속 폐인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이제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어쩌면... 예전부터 밤을 지새우며 계획했던 것을

비로소 실행에 옮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1월 28일.

굉장히 오랜만에 사촌 여동생을 만났었다.

내가 워낙 찐따이기에 주변 사람들과 만나지 않았고,

때문에 명절에도 친척이나 사촌들과 만나지 않을 정도로

홀로 고립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런 상황에서 상당히 오랜만에 만나게 된 것이다.

 

저번 달, 올해 설 연휴에 어머니께 연락을 드렸었다.

사촌 여동생이 본가에 놀러 왔다고 자신을 바꿔달라는 목소리가 들렸었고,

그렇게 사촌 여동생이 오랜만에 목소리를 들으니 반갑다며 나에게 인사를 했다.

사촌 여동생은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위치에 자기 친구들과 자주 놀러 간다면서

나에게 한번 보자고 이야기를 전했고,

늘 집 회사 루트를 무한반복하고 있던 나는 만날 사람도 없었기에 흔쾌히 허락했다.

 

먼저, 사촌 여동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상당한 인싸다.

그냥 인싸가 아니라 진짜 말 그대로 "핵인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가정사가 복잡해서 아버지가 없이 어머니(즉, 나에겐 이모)와 외할머니와 함께 자랐다.

때문에 상당히 어른스러운 면이 있다.

그럼에도 성격이 올곧고 바르게 자라서 사람을 대하는 데에 있어 둥글고 인상이 좋다.

사촌 여동생이 워낙 인싸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주위 친구들은 굉장히 착하고 연예인급으로 예쁜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때 나와 친구가 되어주었던 그때 그 소녀와도 동갑이다.

 

사촌 여동생과 약속을 잡아서 나는 오랜만에 시가지로 나왔다.

정말 몇 년 만에 와보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이러한 이유로 가뜩이나 심각한 길치에 방향치였던 나는,

집에서 불과 15분 거리의 약속 장소를 찾아가는 데에도 애로사항이 있었다.

지하철 노선도 잘 몰라서 역에 오자마자 노선을 찾기 바빴고,

휴대폰 내비게이션 앱을 켜고 열심히 길을 찾아왔다.

 

오랜만에 만났던 사촌 여동생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주말에도 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대우도 좋고 출퇴근도 비교적 자율적인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뒤에서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결론적으로 어쨌든 그만두기도 했고 말이다.

 

만나자마자 식당을 탐색하여 같이 밥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 서로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직장 생활이 힘드네, 누구 때문에 힘드네 하는 그런...

남들 다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였다.

다만, 나에게는 이런 남들 다 하는 이야기조차 굉장히 귀중한 시간이다.

아무래도 이런 이야기를 나눌 상대도 없으니까 말이다.

 

식사를 마친 나는 계산대로 향하려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사촌 여동생이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그러더니 자기가 밥값을 전부 계산하고는

나에게 "이미 계산했지요~"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식당 밖으로 끌고 나왔다.

 

사촌 여동생이 카페에 가서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하자고 했다.

나는 처음 와보는 곳이라서 아무 데나 가자고 했다.

그러자 사촌 여동생은 "나 결정장애 있는데..."라면서 계속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정장애에 빠진 사촌에게 나는 공간도 적당하고 소음이 적당한 곳으로 가자고 했고,

그렇게 간신히 카페에 들어간 나는 사촌에게

"아까 밥값 네가 다 계산했으니까 커피 정도는 내가 살게"라고 대답했다.

 

나는 사촌 여동생에게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그동안 나에게 있었던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사회로 진출하기 전에 백수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이야기,

그러고 나서 간신히 회사에 들어가게 된 이야기,

그리고... 연말에 소개팅을 받았고, 내가 모쏠이라서 까이게 된 이야기까지.

그렇게 말하고 나는 언젠가 죽을 몸이니까 미련을 없애려고 분투하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까지 하고 있는 거지...'

지금의 나 스스로도 이때 당시에 왜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했었는지는 이해할 수 없다.

아마도 그만큼 내가 누군가와 대화할 상대가 없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사촌 여동생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빠, 오빠 아직 젊은데... 아직 기회가 많은데, 아깝지 않아...?"

나는 사촌에게 살아있는 것이 더 힘들다고 이야기했고,

대체 언제까지 사는 것을 버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사촌은 한 가지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오빠, 셰어하우스라도 해보는 게 좋을 거 같아...

물론, 나도 해본 적 없긴 하지만...

그래도 오빠에게는 굉장히 절실해 보여서 그래..."

 

그 말을 들은 나는 휴대폰을 켜고 유튜브로 '셰어하우스'를 검색해 보았다.

... 나 같은 찐따에게는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뭐... 신경 써줘서 고맙긴 하지만... 그래 뭐... 마음만 받을게..."

나는 한숨을 내쉬며 멍하니 카페의 쇼윈도 밖을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지나다니는 학생 무리들과 친해 보이는 그룹들,

그리고... 나의 사무치는 마음을 후벼 파는, 커플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이러한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사촌 여동생이 굉장히 심각하게 여겼는지,

자기 나름대로 신경 써서 조언을 해주는 것 같았다.

 

나 같은 찐따에게 신경 써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고맙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에게는 와닿지 않았다.

 

- 1편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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