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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따의 기록 보관소/찐따의 생각과 일기

찐따는 지난 과거를 바라보며 묻어둔 계획을 실행시킬 생각이다.

펭찐 2022. 11. 6.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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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도 업무용 메신저가 날아왔다.

할 일이 태산이라 주말에도 프로젝트를 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하지 않았다.

물론, 다음 주부터는 해야 할 일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제대로 마무리 지을 생각이다.

그래, 어디까지나 다음 주 까지는 말이다.

 

관두려고 한다.

어차피 그만둘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회사 사람들 전부 좋고, 월요일은 재택근무도 시켜주니까 근무환경도 좋다.

이보다 더 좋은 직장 찾아보라고 하면 자신이 없을 정도로 좋다.

그러나 주말까지 일을 해야 할 정도로 열심히 하고 싶진 않다.

돈이라도 많이 받는다면 모르겠지만,

실제로 지급받는 급여액은 최저시급보다 더 적다.

 

돈에 대한 욕심이나 출세욕 때문이 아니다.

나는 근본부터가 일반인들과는 전혀 다르다.

왜냐하면 나는 찐따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미 삶의 의지가 없는데, 일을 열심히 할 마음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로의 진출도 나에게는 결국 훗날 죽기 위한 여정에 불과하다.

나는 죽기 위한 돈만 마련되면 그만이다.

고로, 돈을 많이 벌고픈 마음도, 열심히 노동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나는 욕심이 없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무사안일.

인생의 자유, 그리고 평화.

숨이 붙어있는 한, 시간을 무탈하고 여유롭게 보내는 것.

 

돈을 적게 벌어도 상관없고, 무시받아도 상관없다.

무시받는 건 너무 익숙해져서 상관없다.

그저 적당히 지내다가 때가 되면 떠나는 것.

그것이 나의 인생에 있어 전부다.

그런데 그 적당히 지내는 것조차도 못 하고 있다.

나에게는 돈이 우선이 아니라, 시간이 우선이다.

즉, 현 상황은 나에게 있어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주말이라는 황금 같은 시간조차 활용하지 못하고 있고,

워커홀릭에 빠져있거나, 시간을 낼 수도 없는 상황에 당도했다.

 

남들이 뭐라고 비웃든, 뭐라고 욕하든 그건 이제 내 알 바 아니다.

이미 나의 존재가 찐따라고 인정한 그 순간부터

나 스스로가 그렇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 알량한 자존심 같은 걸 내세운 적은 추호도 없다.

그래서 봉급을 더 달라는 둥, 일을 적게 달라는 둥,

좀 더 쉬운 일을 하겠다는 둥 이런 부탁을 할 자격도 없다.

 

오히려 나 스스로가 나를 낮추며 사람들을 대하였다.

특히 이제는 처음으로 사회라는 무대에 올라섰기에,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는 과거의 악몽을 되풀이하게 될 뿐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나 자신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주제를 알고 알아서 닥치고 얌전히 일만 하고 있으면

차라리 말주변 없고, 어수룩하고, 조용히 일만 하던,

어딜 가나 한 명씩은 꼭 있는 <흔한 찐따>로 끝날 수 있을 문제를,

괜히 목소리를 내고 나섰다가 나대는 찐따, 재수 없는 새끼가 될 뿐이다.

학교나 사회나 결국 누군가와 협력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눈치를 안 보고 살 수가 없다.

 

때문에 내가 무슨 부탁을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나의 주제는 분명하게 잘 알고는 있지만,

사회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정말로 어쩔 수 없이 부탁을 했다.

그래서 이미 상대방은 나의 요구는 충분히 들어준 상황이다.

그럼에도 나는 견딜 수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나의 문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을,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세상에 무의미하고 가치도 없는 주제에

이 정도 했으면 충분하다고 느껴졌다.

 

남 탓을 하거나 사회를 탓하면 당장은 편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변하거나 진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자신만 더더욱 추해질 뿐이다.

과거의 나는 내가 찐따라는 사실을 어떻게든 부정했었고,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나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천하, 세상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기에,

고로 그 누구의 탓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무능하고도 무가치한 찐따인 나를 탓하는 것이 맞는다.

 

뭐... 일각에서는 청년들에 대한 위로, 고충, 걱정거리와 고민 등

그러한 것들을 보듬어주려는 시도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다.

이를 위한 법적인 제도와 장치가 마련되어 있거나

혹은 현재 마련 중에 있다고는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는가.

찐따인 나는 구원받을 수 없다.

친구도, 애인도, 연락할 지인이 단 한 명도 없는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애초에 나는 그들과 근본부터가 다른 찐따인데,

이런 나에게 무슨 도움을 줄 필요가 있을까.

 

어제 부모님과 같이 외식을 하는 와중에도

근심 어린 표정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일을 관두겠다고 말했고, 부모님은 섣불리 결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맞는 말씀이지만, 찐따인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들다.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어떻게든 다녀보고자 하였지만,

친구도, 애인도 없는 내가 언제까지 목적도 없이 계속 살아가야 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

고민거리를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는 것도 아니고,

기쁨과 슬픔의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28년... 아니... 이제 곧 있으면 2023년이 될 텐데,

29년이라는 세월이 지날 동안 나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왔다.

 

살면서 시도를 안 해본 것은 아니다.

문제는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어설펐거나,

아니면 근본적으로 나의 존재 자체가 글러먹었거나.

내가 찐따라서 마음에 안 들기 때문에 번번이 실패하였다.

 

2020년 10월 말,

2년 전에는 낯선 이에 대한 두려움을 무릅쓰고 한 소녀를 만났었다.

그 소녀 덕분에 나는 <친구>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배웠고,

그 소녀의 격려 덕분에 28년 동안 고졸 백수 히키 찐따인 내가,

정말 당돌하게 사회라는 무대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을 열어주고 친절했던 그 소녀조차도 감당하지 못해서,

그토록 친절했던 소녀조차도 감당하지 못해 떠났는데,

그 어떤 이가 이토록 찐따 같은 나와 친구 하자고 하겠는가.

 

그럼에도 내가 아직까지도 살아있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넌지시 물었다.

죽지 못해 산다는 시답잖은 이유 말고 다른 이유가 있는가 찾아보았다.

 

솔직히 나는 그동안 인생을 살면서 좋았던 기억은 별로 없었다.

학창 시절에도 내가 항상 듣던 말은,

"그럼 뒈져, 찐따 새끼야."

"아 씨발, 이 새끼랑 같은 조 하기 싫은데."

"아 좀 나대지 마 씨발 좆같은 새끼야."

"너 지금 애니 보냐? 좆같은 씹덕 새끼... 학교에서 이딴 거 쳐 보고 있네."

 

왜 이런 말들을 듣게 되었는지는 나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나는 남들이 그저 싫다는 이유로 왕따를 시켰던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의 행실에 문제가 있던 찐따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찐따라는 사실을 끝까지 부정해왔고,

그럴수록 더더욱 나는 고립되었다.

이미 이 블로그에 숱하게 언급해왔기 때문에

이 이상 더 논해봐야 똑같은 말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이토록 고통과 절망밖에 남지 않아 있는 인생에 불과한데,

나는 왜 최종적으로 사회라는 무대까지 올라섰는지 아리송하다.

그래서 계속해서 그 답을 알아내기 위해서 나에게 물었다.

결론은 내가 모르는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이었고,

이 미련을 없애기 위해 나는 계획을 하기 시작했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이과를 나왔다.

이과라고 해서 수학이나 과학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당시 선생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성적이 너무 안 좋기 때문에

그나마 처우가 나은 이과로 꺼지라고 해서

그래서 간 것에 불과하다.

애당초 고졸이니까 대학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공부도 못했고, 대학은 어차피 갈 생각도 없었고,

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은 없었기에 수능도 본 적이 없다.

그 정도로 나는 머리가 굉장히 나쁘다.

모의고사 성적은 어땠는지 벌써 10년이 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5등급 이상의 숫자를 본 적이 없었을 정도로 심각했었다.

6등급에서 8~9등급 정도였다.

그 사실이 나의 모든 지적 수준을 말해준다.

 

이토록 나 자신이 무능한 것은 변함없는 진실인데,

이걸 남 탓을 한다는 게 되려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

공부도 못하고, 잘하는 특기도 없고, 재주도 없다.

그래서 나는 계속 히키코모리 백수였다.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 나는 일기를 제대로 쓰기 시작했다.

그 낡아빠진 노트에는 그동안에 겪었던 나의 고충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래서 싫었다, 무엇이 짜증 났다, 무엇을 먹었는데 맛있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애니처럼 이 세계로 가보고 싶다,

누군가가 부럽다,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죽고 싶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그 내용들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비록 고통과 절망밖에 남지 않았던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이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고 느껴졌다.

게임, 애니, 라노벨, 무협, 판타지, 드라마, 영화.

국어 공부도 제대로 못 했던,

대가리 나쁜 찐따인 나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문화 콘텐츠.

그러한 것들이 있기 때문에 구차한 목숨을 연명하고 있던 것이다.

씹덕 새끼의 시시한 이유지만, 나에겐 이게 전부다.

나에게 남은 미련이라고 한다면 이게 전부다.

 

이러한 문화 콘텐츠를 잠시 보는 것으로

과연 계속 고통받는 인생을 살아갈 이유가 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정말로 고독으로 점철된 이 인생을 살아갈 가치가 되는 것인가.

함께할 사람이 없어서 도피처로 삼았던 이 문화 콘텐츠가,

그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서라도 보면서 살아갈 이유가 되느냐 물어보았다.

지금까지는 그랬었다.

근데 이제는, 그리고 앞으로는 모르겠다.

 

나이는 계속 먹고 있고, 그러는 사이에 청춘은 이미 끝나버렸고,

2년만 지나면 어느덧 서른을 앞두고 있는 몸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서른, 마흔, 쉰, 여든...

그때까지 계속 애니만 보면서 혼자 지낼 가치가 되느냐는 정말 큰 문제다.

 

중년, 혹은 노년의 어떤 회사원이 동네 철없는 애새끼처럼

직원들 다 불러놓고 과장, 부장, 대표랑 같이 술래잡기를 하고 있고,

퇴근하고 동네에서 딱지치기하거나, 팽이를 돌리고 있거나,

유희왕 카드 갖고 놀고 있거나 하면 무슨 생각이 들까.

제삼자가 볼 때는 '오징어 게임이라도 하고 있나' 생각할 수도 있겠다.

즉, 나잇값 못 한다고 생각하는 게 정상이다.

 

늙은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계속 애니만 보고 지내는 게 과연 정상일까.

주변 사람들 눈치 볼 필요 없으니까 상관없을 수도 있다.

타인이야 뭐, 그저 '저 할아버지 치매 왔나?' 이렇게 생각하고 신경도 안 쓰겠지만,

나 스스로가 현재 나 자신이 행하고 있는 것을 납득할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즉, 세월과 타협할 시기가 올 텐데, 그때가 되면 내가 나를 용납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도 내가 나 자신이 용납이 안 되는데.

 

나는 뭔가 되고 싶은 꿈도 없다.

블로그에도 작성했던 적 있듯이,

철없던 어린 시절에는 애니를 보고 나서

나도 '해적왕'이 되고 싶다 그뿐이었다.

꿈도 없고, 꿈이 없으니 목표도 없고,

목표도 없으니까 열정도 없다.

 

타인은 이토록 열정이 없는 내가 전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한다.

뭐... 애초에 이해해달라는 말 전혀 꺼낸 적 없기도 하고,

그럴 필요성조차도 이제는 없다고 느끼고 있긴 하지만,

나 역시도 그렇게 말하는 타인이 이해가 안 간다.

나는 일반인들과 근본부터가 다른 찐따인데

나를, 즉 찐따를 이해한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나 자신이 일반인의 사고 영역에서 이해 가능한 수준이라면

애당초 내가 이렇게까지 찐따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가끔씩 나를 전혀 모르겠는데, 타인이 어찌 나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이 든 순간 어차피 나는 쿨한 척하는 쿨찐이다.

그렇다고 밝은 척 행동하면 나대는 찐따다.

죽 닥치고 조용히 있으면 말도 못 하는 병신 같은 찐따다.

뭐... 뭘 해도 찐따다.

비록 나에게 욕심은 없어도, 나태함에 의해 파렴치함이 동반되어 찐따다.

 

"그러니까 네가 씹덕 새끼인 거야."

"그러니까 네가 모쏠 아다인 거야.

"그래서 네가 찐따인 거야."

 

나도 알고 있다.

새벽에 잠도 안 자고 매일 이딴 글이나 쓰고 있는 것만 봐도 증명이 되니까.

초등학교 4학년 시절부터 현재까지 줄곧 바라 왔던 영면.

계획을 세워도 그럴싸한 계획에 지나지 않아 빈번히 실패로 끝났고,

나에겐 죽고자 하는 용기와 절실함이 부족했던 부분도 있었다.

 

그렇다면 없는 용기도 만들어야 한다.

나에게 유일한 낙이었던 애니, 라노벨, 영화, 드라마와 같은 문화 콘텐츠.

그것이 차단되어버린다면, 나는 삶에 대한 이유를 잃는 것이다.

진퇴양난의 상황이 온다면 핑계를 댈 수도 없을 것이다.

 

오래도록 간직해온... 끊임없이 계획했던 세상과의 진정한 단절.

내가 좋아하는 잠을 영원히 자는 것.

감각을 자각할 수 없는 상태.

핑계로 묻어두었던 그 계획을...

이번에 사회라는 무대에서 내려온다면,

즐길 수 있는 여흥 거리도 없어지므로,

아마 일말의 핑곗거리도, 안식도 얻을 수 없겠지.

 

그래... 찐따인 내가 이 정도까지 해본 게 어디인가.

평생 불가능할 줄만 알았는데...

사회라는 것을 경험해본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낀다.

다만, 나에게는 얼마 남지 않은 이 순간...

세월의 편린... 시간이 더 중요하다.

전부 다 포기할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시간이 허락해주어야 가능한 것이다.

 

정말 병신 같고 하찮고 변변찮은 찐따 같은 인생이다.

그래도 뭐, 태어난 것은 선택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사건이었지만,

적어도 인생을 끝내는 건 내 손으로 직접 하고 싶다.

구제 불가능한 병신 같은 이 찐따의 마지막 고집이라고 해야 할까...

 

비록 실패뿐인 인생의 연속이었지만,

적어도 마지막은 단 한 번이라도 성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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