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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따, 인싸 모임에 다녀오다

펭찐 2022. 7. 2.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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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도 언급하였듯, 어쩌다 보니 인싸 모임에 다녀왔다.

처음에 가기 전에는 무슨 솔베이 회의에 가는 것 마냥 어떤 언쟁이 있을까,

혼자서 쉐도우 복싱을 하면서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내렸던 결론은 '그냥 뭐 하려 하지 말고 존나 가만히 있어야겠다.'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 자리에서도 멀뚱멀뚱 가만히 있기만 했었다.

솔직히 공감 가는 이야깃거리도 없기도 했고,

애초에 찐따인 내가 그들과 공감할 수 있는 화젯거리도 없다.

그래서인지 예상대로 나 때문에 분위기가 곱창 나있는 상황이 종종 있기도 했다...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명문대학 출신들이다.

의사도 있고, 대학원생도 있고, 대기업에 다니고, 금융업계에서 일하는 동기도 있다.

나만 무직 백수 히키 찐따라서 그들이 말하는 것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들은 말발도 좋고, 성격도 좋고,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고,

진짜 엘리트 중의 엘리트 "인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설계하고 그것에 대해 "현재"를 이야기하며 공감을 한다면,

나는 "과거"에 매몰되어 있었고 그것을 통해 "현재"를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니라.

그들은 연애,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결혼할 때가 되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더더욱 그 이야기에 대해 할 말도 없었고, 공감할 수도 없었다.

 


 

날씨도 굉장히 더운데 밖에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나는 내심 놀랐다.

나는 인싸들을 보면서 진심으로 깨달은 바가 있었다.

온라인, 즉 커뮤니티 세계와 현실세계의 괴리는 상당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커뮤니티에서 정의하는 '인간'이라는 주체와 정의, 혐오적인 감정이라는 것은

이 현실세계에서의 사회와 굉장히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깨달았다.

 

우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일진 양아치들이나 하는 일들을 전부 싸잡아서 '인싸 새끼들'이라고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그냥 인싸들은 친구들 많고 사회생활 잘하고 다른 누군가를 위해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일 뿐이다.

애당초 "끼리끼리 논다"라는 말이 왜 있는지 실감하였다.

나 같은 찐따들이 가뜩이나 이런 무더운 날씨 속에 인파 많은 곳을 굳이 찾아서 갈까?

아니면 집에 틀어박혀서 인터넷이나 하면서 찌그러져있을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금방 답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커뮤니티 이용자 수는 일반 사회의 군중들의 수에 미치지 못한다.

극소수의 인원들이 만들어낸 혐오적인 프레임에 불과하였다는 것이 그 모임을 경험한 내가 깨달은 바였다.

그들, 즉 "인싸"들은 굉장히 사고방식이 긍정적이고 진취적이며 이타적이다.

사람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탓일까.

 


 

왜 "현생을 사세요"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을까?

나는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었다.

이유야 당연히 그동안 경험을 할 기회조차 없었으니까.

친구가 없으니까 밖에 나갈 일도 없어서 밖은 어떤 식으로 굴러가고 있는지 알 턱이 없다.

그나마 접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인터넷 찌라시로 올라오는 자극적인 기사들 뿐.

그딴 거나 보면서 사회를 판단하려 드니까 편협한 시각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직접 나가서 그들이 어떻게 사회에 어울리고 융화되는지 구경이라도 해본다면

금방 잘못된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냥 그런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기 싫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빼고 어차피 다 잘 나간다"는 패배주의적인, 아니 어쩌면 냉소적인 자세를 가져야만 버틸 수 있다.

일종의 정신승리인 셈이다.

 


 

그러나 "인싸"라고 해서 다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고충과 고통이 있었다.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는 만큼 사람들을 많이 상대해야 하다 보니까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함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또 생각하였다.

연애를 하려면 그만큼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함을 견뎌내야만 한다.

나는 그것을 망각한 채 연애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었다.

이런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왜 나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을까.

나야 뭐, 어차피 찐따라서 연애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지만,

되려 이것이 잘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이 들면서 그와 동시에 나는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가 생각이 났다.

 

 

쇼생크 탈출에서 브룩스의 가석방 결정 후 헤이우드가 살해당할 뻔한 뒤 레드와 나눈 대사가 있다.

 

"저 담벼락(교도소 담)이란 게 참 웃기단 말이야.
처음엔 싫어하다가 어느새 익숙해지지.
세월이 흐르고 나면 기대지 않고선 못 살게 돼.
그게 길들여진다는 거야."
"젠장,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목을 매지."

 

나는 처음에 내가 "찐따"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고, 굉장히 불쾌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반드시 "찐따"여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즉, 위에서 언급한 쇼생크 탈출에서도 나온 대사와 일맥상통한다.

처음에는 감옥살이가 싫은 것은 누구나 다 똑같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더 이상은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없어져버려서

여기 이곳, 감옥이 아니면 더는 살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

나 역시도 이미 "찐따"라는 감옥을 만들고, 그곳에서 세월을 보내다 보니까

이미 익숙해진 탓에 내가 "찐따"가 아니면 안 되는 상황까지 오고야 만 것이다.

그래서 인싸들이 찐따를 뺏어갔다는 망언이나 하고 그들을 적으로 만들며 매도하는 길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 방어기제인 셈이다.

 

참으로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이래서 경험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그들을 다시 만날 일이 과연 있을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나 같은 불쾌한 찐따를 한 번이라도 불러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이제는 "찐따"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미련한 "찐따"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만족스럽다.

과거에는 그렇게 혐오스러워했던 "찐따"인 내가, 오히려 "찐따"여서 잘 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혼자서 여행을 다녀올까 생각 중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경험을 쌓는 것도 좋은 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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