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찐이의 블로그

안녕하세요오오...

펭찐이의 블로그 자세히보기

찐따의 기록 보관소/찐따의 생각과 일기

찐따, 세월이 흐르고.

펭찐 2022. 2. 10. 04:20
반응형

 

한때 재밌게 했었던 미연시의 바다빙수처럼.

 

인터넷이라는 세계를 떠나 현생에서만 지내어 본 지 약 5개월이 조금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짧을 수도, 혹은 길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체감상으로는 거의 3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것 같은 기분이다.

현대인에게 인터넷, 온라인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비중이 큰지 알 수 있었다.

SNS는 애당초 연락할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 사용할 일이 없기에 불편함이 체감되진 않았다.

그동안 뉴스도 안 보고 지내서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갔는지조차 전혀 모른다.

뉴스조차 안 보고 지내는 급이라 당연히 요즘 인터넷 문화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어떤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있었는지도 당연히 모른다.

이 글을 보면 현대인이 어떻게 5개월 동안 인터넷을 아예 안 하고 살 수 있느냐고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나도 처음에는 '당연히 불가능하지.'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물론 그렇다고 인터넷을 아예 안 한 것은 아니다.

잠시 휴대폰을 켜면 날씨도 확인해야 할 일도 있었고, SNS는 하지 않더라도 부모님이 계시니 연락은 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가 한 명도 없었기에, 혼자 외로움을 이겨내며 지내기 위해서는 애니나 드라마도 한 편씩은 봐야 하니까. 그 찰나의 스트리밍 서비스 혜택은 누렸다.

물론, 사람들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유튜브나 인터넷 방송은 전혀 손대지 않은 채 말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과 소통을 하기 위한 '인터넷 세계', 즉 '커뮤니티'와 '인터넷 문화'라는 것으로부터 완벽하게 단절을 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위에 서술하였듯, 이 기간 동안은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가뜩이나 연락할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는데 인터넷마저도 하지 않으니까 그 잠시 동안 내게 극도의 외로움과 극도의 두려움이 덮쳐왔었다.

악몽에 매일매일 시달렸고, 심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공황장애 비슷한 증상까지 왔었다.

하루 종일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어서 나는 절대 안 그럴 줄 알았는데 폐쇄 공포증도 겪어보았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매일 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애니를 보면서 기나긴 밤을 버텨내고 또 버텨내었다.

가끔 부모님과 연락할 때 말고는 대화할 상대가 없으니 약 일주일 동안은 이 악물고 묵언수행을 하며 지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입안에 침이 빨리 고이고 금방 말라버려서 말을 많이 하는 사람만큼 물을 많이 마셔야만 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정도로 말을 안 하면서 지내다 보니 전혀 궁금하지도 않았던 신기한 체험도 해봤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게 그렇게까지 고통받을 일이었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때 당시의 나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당시 나에 대해 스스로 평을 해보자면 한심함과 경멸스러움이라는 감정이라는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되려 그 당시의 나 스스로가 불쌍하고 안타깝고 처량하다고 평해 본다.

그러나 그때의 내가 있었으니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드는 것을 보아하니, 확실히 나는 스스로가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생각이 든다.

 

그 당시 나는 "왜" 그런 짓을 해야만 했고, "왜" 그런 행동을 했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지금에 와서 그런 것을 따져봤자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

약 두어 달 때쯤 지났을 때였나. 날씨가 급격하게 추워지던 시기였는데, 그때부터 뭔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세계마저 단절하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익숙해져서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한 느낌이 들기 이전 기간 동안은 너무나도 사람이 그리웠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익숙해지니까 훨씬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정신이 깨어있는 동안에는 멍 때리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보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할 수 없을까 고심하던 끝에 명상하는 방법을 체득하게 되었다.

명상만 하기에는 너무 심심해서 원래 글을 많이 쓰는 편이었기에, 글을 쓰면서 생각을 조금씩 정리하게 되었다.

글을 쓰다 보니 한계가 있어 책을 찾아 독서를 했고, 학식이 얕다 보니 이해력이 부족해 나에게 필요한 공부를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방구석에만 있다 보니 몸이 너무 쑤셔서 밖에 나와 운동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악몽 때문에 밤낮이 바뀌다 보니 생활패턴이 망가졌는데, 악몽도 더는 꾸지 않게 되자 이것을 바로잡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식단의 밸런스가 맞춰지게 되었고, 밤에 졸려서 빨리 잠드니 무언가를 먹지 않아 적게 먹게 되었다.

나름대로 운동도 하고 식단도 조절하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취미도 스스로 만들어냈다.

그래서 그때와 비교하면 살이 꽤나 많이 빠졌고 건강상태도 그때보다 훨씬 괜찮아졌다.

이토록 혼자서도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굳이 친구를 꼭 만들어야만 했었나 생각이 든다.

고독은 영원할 줄만 알았는데 익숙해지니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나는 더 이상 이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더는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내가 변화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아무래도 시간, 세월이 아닐까 싶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사람들은 잊기 마련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그래, 이것을 깨닫게 해 준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다.

 

여느 때처럼 나는 바깥에 잠시 나와 운동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다 마스크에 땀이 차고 숨이 벅차서 잠시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오늘은 운동 다 하고 무슨 애니 볼까? 유튜브 추천 영상도 못 보니까 X나 불편하다. 그렇다고 유튜브 딱 켰는데 사람들 싸우고 있는 거는 보기 싫다.'라는 한심한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빨리 집에 들어가서 애니나 볼 생각에 들떠서 일어나려 했는데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아무래도 같은 동네에서 계속 학교를 다녔기에 이 동네에 지내면서 한 번을 마주치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긴 했다.

예전에 나와 같은 중학교를 나왔던, 나를 괴롭히는데 적극적이던 동급생이 내가 앉은 벤치의 바로 옆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설마 나를 알아봤을까, 나를 알아보면 어쩌지, 그냥 빨리 모른 척하고 집으로 도망쳐야 하나, 그게 더 이상하게 보이면 어쩌지.

이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눈앞이 노래지고 있었다.

게다가 옆에서 같이 수다를 떨고 있는 사람 역시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던 그 친구가 맞았다.

초중고가 전부 같은 곳에 붙어있다 보니 떼려야 뗄 수 없는 지극히 당연한 운명이었다.

중학교 동창과 고등학교 동창이라니. 게다가 나를 괴롭혔었던.

당연히 나를 알아볼 줄 알았고, 또 나를 조리돌림 할까 봐 일단 도망칠까 생각하고 조심조심 옆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 두 명이 나를 알아봤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담배 몇 모금씩 태우고 수다 떨고 휴대폰 잠시 들여다보고를 반복했다.

마스크에 김이 서려 답답하기도 했고, 그토록 나를 앞장서서 괴롭혔던 인간이 정말 나를 못 알아보는 건지 너무나 의아해서 마스크를 고쳐 쓰는 척하며 잠시 마스크를 벗어보았다.

그래도 그들은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은 잠시 수다를 떨다가 제 갈길을 갈 뿐이었다.

그때의 그 기분은... 정말... 뭐라고 해야 할까.

그동안 나 혼자 고통받고 있었구나... 나 혼자서 쉐도우 복싱하고 있구나. 더는 존재하지 않는 망령과 싸우고 있었구나.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인생을 살고 있었구나.

나 같은 건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았구나.

그 기분은 분노라는 감정도 아니고 안도감이라든가 후련함, 허망함 같은 감정도 아니었다.

그때의 그 기분이란, 표현하기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하나의 깨달음 그 자체였다.

'사람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또한 그만큼 정교하게 단순한 존재'라는 것을 크게 체감했다.

어쩌면 그들도,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 유순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연을 오랫동안 바라보면 그 심연 역시 나를 바라본다고 니체가 그랬었던가.

어쩌면 세상 일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과도한 열등감으로 스스로가 빚어낸 심연이 아니었을까.

이제 그만 과거의 나를 놓아줄 때가 되었고 그때가 바로 지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먼지 쌓인 창고 안에서 졸업앨범을 찾아냈다.

잠시 펼쳐보며 과거 나를 괴롭혔던 그 두 사람을 찾았다.

이름도, 얼굴도 그대로인 것이 변한 것 하나 없었다, 다른 이들도 모두.

배달시키고 집에 남아있던 상자에 차곡차곡 졸업앨범을 넣어서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코로나라서 그런지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그때 아무도 없어서 나는 상자 주변을 모래로 덮어놓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비로소 나는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과거의 나와 작별할 수 있게 되어서 기뻤다.

세상 일에 더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쁨이 느껴졌다.

 

단잠에서 깨어나 생수 한 모금을 적시고 달빛을 바라보면서 골똘히 사색에 잠긴 채 글을 남긴다.

내가 과거에 찐따였고, 지금도 그렇다 할지라도 그런 건 이제 중요하지 않다.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내게는 그것 또한 중요하지 않다.

그저 지금처럼 나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지금 같은 인생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과거의 내가 글을 쓴 것을 보아하니 앞으로가 걱정이라는 식의 글들이 참으로 많았다.

이분법적이고, 편향적이고, 우울함에 잠겨 나 자신이 정말 갈구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모른 채.

과거의 내가 범했던 실수를 다시금 번복하지 않고 지금처럼 만족스러운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설령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도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지금처럼 마이 페이스를 유지할 수만 있으면 좋겠다.

비록 나의 미래가 희망도 없고 암울할지라도 스스로가 그 과정 속에서 만족감을 취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좋다.

 

과거의 내가 미래의, 지금의 나에게 진퇴양난, 사면초가, 고립무원이라 호소하였던가.

그렇다면 나는 비로소 회자정리, 거자필반, 생자필멸, 사필귀정이라고 그 시절 나에게 답하고 싶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