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찐이의 블로그

안녕하세요오오...

펭찐이의 블로그 자세히보기

찐따의 기록 보관소/찐따 아카이브

찐따의 학창시절: 초등학교

펭찐 2020. 3. 31. 07:54
반응형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었나.

찐따가 정확히 어느 시기부터 찐따가 되는지 본인이 찐따라서 잘 알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저 중2병이 시작되는 중학생 때부터라고 막연하게 떠올렸을 뿐 내가 정확하게 언제부터 찐따가 되었는지를 말해보라고 하면 선뜻 고민이 되었다.

그렇지만 본인의 경험에 의거하여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찐따가 되어가는 과정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다.

그것을 이야기하고자 때는 거슬러 올라가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간다.

이하는 거짓과 과장이 없으며 인명 또한 실존 인물인 100% 실화임을 밝힌다.


대다수가 그렇듯 나 역시 평범한 유년기를 보내왔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자 나는 우선 겁부터 먹었던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처음 겪게 되는 낯선 환경, 엄마랑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불안감, 만나보지 못한 친구들과 동료들, 그리고 '학교'라는 곳에 정말로 가게 되었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으리라.

그런 불안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기대감에 벅차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내게 닥칠 시련들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 부류에 속하는 친구들 중 독보적으로 찐따라는 낙인이 찍혀버린다면 자연스럽게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나는 처음 입학하자마자 찐따가 된 것 같진 않았다. 이 또한 어떻게 보면 정신승리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제삼자의 시각으로 바라보았을 때, 그동안 겪었던 일에 비하면 이때는 정말 아닌 것 같다.

엄밀히 따지자면 피해자가 된 가해자, 당해도 싸다고 해두는 것이 좋겠다.

그 시절 나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나대기 좋아하는 철없는 애새끼'가 가장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에이 무슨 콕 집어서 '그 시절'이라고 하냐? 지금도 똑같이 철없고 병신같이 구는 건 여전하지 않냐?"라고 이야기한다면 "어린 나이에 그럴 수도 있지"라는 편리한 까방권의 존재를 생각하며 대충 넘어가 주면 좋겠다.

입학, 학교라는 낯선 공간에서 오는 불안함에 대한 자기 방어적 행동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때 말썽을 많이 부렸다.

옆에 짝꿍이었던 여자애를 울리고 괴롭히고 툭하면 싸웠다.

입학하자마자 전교 찐따가 되어버린 친구를 나 또한 멸시하며 다른 친구들과 괴롭히기도 했다.

당시 그 친구를 괴롭히면서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그저 나와 다르고, 남들도 다 괴롭히니까 나 역시 그렇게 해도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대기를 좋아하고 맨날 까불고 말썽만 피우던 애새끼는 그렇게 저학년을 보냈다.

 

여기서부터 시작인 것 같다.

문제는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생기기 시작한다.

사춘기를 빨리 겪는 친구들은 고학년 때부터 겪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여자와 남자, 공부 잘하는 애와 못하는 애, 운동 잘하는 애와 못하는 애, 싸움 잘하는 애와 못하는 애.

자아성립을 하기 시작하는 시기부터 자신이 속한 부류가 어느 부류인지, 어떤 소속인지 딱 잘라서 구분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이 말 즉슨 보이지 않는 파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약 3~4년을 함께 지내왔으니 대충 각자의 서열과 위치, 속하는 그룹이 어떤 곳인지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찐따가 되는 과정은 순식간일 수도 있고 서서히 진행될 수도 있다.

누군가와 맞짱을 떠서 찍소리도 못하고 처발렸거나 일방적으로 처맞고 끝났을 때, 장난 삼아 툭툭 건드려 봤는데 별 반응이 없을 때, 신체에 하자가 있거나 목소리가 좆같거나 작을 때.

체력, 힘. 학교에서 암묵적이고 나름대로 체계적인 계급은 결국 힘으로부터 비롯된다.

아무리 못생겼어도, 아무리 뚱뚱해도 싸움만 잘해도 찐따라는 쓰레기 같은 존재가 되지 않는다.

나는 소위 일진들이 말하는 '장난'이라는 것에 반응을 못했기 때문에 서서히 찐따가 되어가다가 순식간에 찐따가 된 케이스다.

왜냐하면 나는 운동을 못했고, 싸움도 못했으므로 그 힘에 대해 반격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의 계급은 이때부터 찐따 확정이었다.

이에 대해서 더 정확하게 이야기를 해보자면 찐따라는 낙인이 찍히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모조리 채우고 있었다.

나는 살찌고 느리고 둔했으며 공부도 못했고 무엇보다 저학년 때부터 싹수가 보였던 좆같은 성격.

딱 봤을 때 '아 저 새끼 뭔가 좆같아. 진짜 개 패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외모뿐만 아니라 평소 행실이나 말투에서 비롯되는 것 아니겠는가.

 

5학년 2반. 4층에 위치하고 있고 우유 당번이 될 때마다 참 개 같았던 그 야속한 계단들.

내가 등교하자마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유 상자를 들고 반에 옮기는 것이었다.

우유 당번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공교롭게도 내가 우유 당번이 아니었어도 분명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우유 셔틀, 찐따였으니까.

힘들게 우유 상자를 들고 올라왔다면 신발을 갈아 신어야 한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실내화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던 학교였는데 신발장이 각 반마다 따로 위치해있었다.

실내화를 생각 없이 신었다가 발 뒤꿈치에 구멍이 날뻔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늘 신중하게 실내화 내부를 살핀다.

다행히도 압정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면 이번에는 이상한 게 묻어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저번처럼 무심코 신었다가 양말이 잉크 범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이런 상황까지 왔지?'라는 생각조차 할 겨를도 없이 정신 차려보니 찐따가 되어있었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나도 모르는 새 당연하다는 듯 순응하고 있었다.

반에 들어갔더니 아침 조회를 시작한다. 제비뽑기로 자리를 바꾼단다.

한 달 주기로 자리를 귀찮게 바꾸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는 건지 찐따인 나로서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지만 말이다.

제발 나를 괴롭히는 애들만 아니면 그 누구라도 좋다고 기도하면서 제비를 뽑는다.

그때 내 손에 쥐어진 번호, 아직도 기억이 난다. 34번이었다.

자리 정해줬으면 선생이 애들 옮기는 걸 좀 봐주고 도와줬으면 좋았을 텐데 맨날 교무회의 가야 된다면서 아침 조회 15분 정도 끝나면 항상 바로 나갔다.

아무튼 담임선생은 자리 대충 정해준 다음 회의하러 나가고 교실은 책상 끄는 소리, 책 옮기는 소리, 떠드는 소리로 가득했다.

"34번 누구야?" 여자애 목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다행히 나를 괴롭히는 애는 아니었다.

최대한 티 안 나게 속으로 쾌재를 외치며 먼저 가방부터 옮겼다. 스리슬쩍 그 여자애 눈치를 보면서.

책상 밑에 책들을 옮기려는데 갑자기 그 여자애가 소리도 없이 그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한다.

"나 왜 쟤랑 짝꿍이야...?" 아니나 다를까 조용히 넘어가는 일은 없었다.

순식간에 여자애들이 그 애 주변을 둘러싸며 위로하기 시작했고, 나는 여자애들의 경멸하는 눈빛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고 무언가 묵직한 것이 내 등 뒤를 강타했다. 그 뒤에 쏜살같이 달려와 발차기를 날린다.

"이 새끼가 OOO 울렸어!" 나를 괴롭히는 담당 일진 성준이었다.

그리고 나서 책상을 발로 차 뒤로 넘어뜨렸다. 책상 밑에 들어있던 책들이 바닥으로 쏟아져 나왔다.

"야 개진혁 너 눈 좋다며. 얘랑 자리 안 바꿔주고 뭐하삼?"

진혁이는 나 아닌 또 다른 찐따로 전락한 친구였다.

이상하게도 내가 본의 아니게 울린 여자애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그 찐따 친구 이름만큼은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00년대에 초등학생이었다. 그러니까 대략 20여 년 전이다.

이때 말 끝마다 '~하삼'을 붙이는 것이 유행했는데, 이것 역시 아직까지도 기억할 수 있게 된 계기가 저 성준이라는 담당 일진이 저 좆같은 말투를 틈만 나면 썼기 때문이니라.

이 시절 찐따들의 이름 성씨는 무조건 '개'씨로 개명당하곤 했는데, 이는 나에게 찐따라는 것을 확실하게 낙인을 찍어줌과 동시에 내 스스로가 찐따라는 것을 어렴풋이 상기시켜주고 그에 대한 매개체 역할 또한 갖는 것 같다.

요즘 찐따들은 학교에서 어떻게 불리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다니던 시절에는 찐따들 이름 성씨가 '개'씨였고, 나 역시 '개'씨로 강제 개명당했다.

학창 시절 내내 아침 댓바람부터 뭔가 일이 안 터지는 날이 없었다.

오히려 아침부터 일이 조용하고 순탄하게 넘어간다면 그거는 그거대로 불안해 죽을 것 같았다.

반복된 학습이 낳은 효과였을까.

바닥에 널브러진 책들을 주워 담고 있는데 내 옆에 앉았던 전 짝꿍이 내 책을 발로 차고 짜증을 내면서 말했다.

"아니 씨발놈아 네 거 책 내 책에 닿아서 썩었잖아"

요즘 초등학교는 책상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 시절 초등학교 책상은 2인용 책걸상이었다.

 

 

이렇게 생겼다. 그래서 내 옆에 앉았던 친구 책도 같이 다 쏟아졌다.

그 상황에서 내가 그 친구 책에 손이라도 댓 다간 책 썩는다고 뚜드려 팰게 뻔해서 대신 치워줄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눈 내리 깔고 "미안해..." 이 한마디 하는 것뿐이었다.

항상 생각하고 항상 마음속으로 읊조리며 되뇌었던 말, '제발 맞짱 뜨자고 하지 말아 줘 제발'


쓰다 보니 예상외로 길어진 것 같다.

'이 새끼는 진짜 씹 찐따구나.'라는 개소리를 길게 써봤다.

정말 수도 없이 찐따 짓을 했었고, 그중에서 강렬한 기억만 끄집어내서 최대한 리얼하게 적으려고 했는데

서두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내가 찐따라서 글재주도 없다는 것이 여실 없이 드러나는 것 같다.

이런 행위를 '기억 폭행'이라고 하던데. 추억과 트라우마는 한 끗 차이일까.

정말 이까진게 뭐라고 쓰면서 울뻔했다.

이때까지는 그래도 정말 양반이었다는 것을 내심 깨닫는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이 글은 여기서 끝내고 좀 나눠서 더 써봐야겠다.

 

 

 

반응형

'찐따의 기록 보관소 > 찐따 아카이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찐따의 MBTI 성격 유형 검사  (0) 2020.04.08
찐따의 아싸 빙고 게임  (0) 2020.04.07
찐따의 찐따 빙고 게임  (0) 2020.04.07
찐따가 찐따임을 깨달을 때  (0) 2020.04.01
나는 찐따다  (4) 2020.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