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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따의 기록 보관소/찐따의 생각과 일기

카페에 간 찐따

펭찐 2020. 10. 2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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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한 다음에 죽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 뭔가 하는 거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은 알지만,

뭔가를 하든 하지 않든 그것을 가지고 왈가불가하는 것 역시 무의미한 것 아닌가.

남한테 피해만 주지 않으면 상관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미 피해겠지만,

이 불편한 생각만큼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곧 떠날 몸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가능했던 일이다.

 

악몽 꾸는 것이 싫어서 최대한 깨어있기 위해

소량의 카페인을 섭취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전 처음으로 카페를 혼자 가봤다.

커피셔틀을 할 때 말고는 의지를 가지고 혼자서 와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공황상태가 왔다.

무엇을 주문해야 하는지,

그냥 가지고 나갈 건지,

안에 있을거면 무엇을 해야 할지

그런 사소한 것들을 꼼꼼히 계획하거나 생각하지도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무작정 들어간 것이 뒤늦게 후회되었다.

정말 하기 어려웠던 점원과 눈을 마주치는 것부터 시도해야 했다.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은 스스로 자기 최면을 걸고 의식하면 그나마 좀 괜찮지만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공황상태, 무의식 상태에서 마주 보려니 거기서부터 힘들었다.

나는 '침착해'라고 속으로 되뇌며 애써 괜찮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걸 요즘 말로 '억텐'이라고 하던가.

속으로 나를 얼마나 엿같다고 생각할까.

내가 정말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주문하는 동안 이런 생각이 수도 없이 들어서

정말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일단 메뉴판부터 보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모르는 이상한 메뉴가 있을지도 모를 테니까.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데이터를 쌓아놓기 위해서 한번 살펴봤다.

다행히도 메뉴는 예전과 다르지는 않았다.

무난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할지, 마끼아또를 주문할지 생각했다.

단 것을 싫어하지만 당분은 혼란한 마음을 잠시 재우는 데 좋다고 어디서 주워 들었다.

그래서 마끼아또를 머릿속에 입력시켜놓고,

눈치를 좀 보면서 먹고 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기다리는 동안 뭘 해야 할지 몰랐다.

휴대폰을 켜봤자 찐따라서 연락할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모바일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고민하다가 문뜩 이런 생각도 들었다.

'여기서 내가 뭔가 더 하려고 해 봤자 오히려 민폐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고 멀뚱멀뚱 카페 안을 둘러보는데

다행히 카페 안에 니코틴 충전소가 있었다.

뇌에 니코틴을 채우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대화를 나누는 소리, 업무 보는 소리, 웃음소리, 통화하는 소리가

흡연부스 안으로 웅얼웅얼 새어 나오며 공간을 가득 메웠다.

이것을 아울러 '인싸들의 소리'라고 표현하고 싶다.

세상은 언제나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나 혼자 멈춰있는 기분이 들었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즐거움을 공유하는 소리는

괜히 스스로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고

남들은 당연하게 여기며 당연하게 행하는 일들이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하염없이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냥 곱게 죽을 것이지 뭐하러 이런 곳까지 왔는지 계속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그럴 겨를도 없이 주문받은 커피가 나와서 진동벨이 울려댔다.

 

구석진 자리는 다른 사람들이 거의 다 차지한 상황이라서

제일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트여있는 자리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어쩔 수 없이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내 옆자리를 지나가면서 뭐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저 새끼는 병신같이 자리 차지하고 혼자서 뭐 하는 걸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쳐다보듯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저 나의 단순한 피해망상이었으면 좋겠다.

혹시나 해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펜과 노트를 챙겨 왔었는데

이것이 신의 한 수였다.

잠시 동안 나의 시선과 생각을 노트로 돌릴 수 있었다.

비록 아무것도 하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혼자 뭘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테니까.

뭔가 하는 척만 하기 위해 노트를 펴놓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는 누구든지 자기가 솔로라고 하면서

커플은 죽창이 필요하다고 틈만 나면 떠드는 주제에

바깥세상은 어쩜 그리도 커플이 많은지 모르겠다.

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커플처럼 보였다.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뤄 말할 수 없는 시기와 부러움이 느껴졌고,

소위 말하는 인싸들의 분위기는 정말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서

앉아있으면서 '그냥 나갈까'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르겠다.

굳이 있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렇게 앉아있으면 내면에 상대적 박탈감을 축적시킬 수 있고

그로 인해 내가 얼마나 하찮고 쓸모없는 존재인지 확인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리하면 하루라도 빨리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동기부여가 되어서

의지가 더 생길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벌을 받기 위해 온 것인가?

그래, 나는 벌을 받기 위해 온 것이다.

마침 펜과 노트도 있겠다, 반성문이나 쓰자.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반성문을 쓰기 시작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알고 있는 탓에

했던 이야기 또 하는 격인지라 너무 익숙해서

금방 노트 한 페이지를 채울 수 있었다.

반성문을 쓰다 보니 아예 다른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현실 속 이야기가 아닌 허구의 이야기에 대해서.

나의 현실, 현실 속 이야기는 희극이 없는 비극만이 존재할 뿐이다.

내가 아예 다르게 태어났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진정 행복을 누리면서 지내고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스치듯 지나가서 허구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비록 현실 속의 나는 실패작이지만

허구 속에서는 실패를 실패라고 부르지 않아도 되기에.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무의미한 짓을 찾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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